대장 마루에 서면 동네 풍경이 다 보인다. 대장 마루는 대장 마을에서 높이 차지하고 있는 산등성이다.
 

대장 마루의 봄. <한도훈>

대장 마을의 남쪽의 높이는 해발 15.2m에 달했다. 섬말의 동그랑재가 14.5m이므로 약간 높다. 이 높이라면 부평수리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이라도 해도 꼭대기까지 수해를 입을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대장 마루는 최근까지 황무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황무지를 개간해서 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황토흙이어서 밭농사가 아주 잘 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장 마을에 “무슨 산이 있냐?”라고 물으면 “있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단, 그 산에는 숲은 없고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 그리고 황토밭에 옥수수, 고구마, 고추, 들깨, 방울토마토, 땅콩 등이 가득하다.

대장 마루 가운데에 두릅나무 한 그루가 있다. 봄에 두릅순을 따 먹었지만 여름이 되니 잎이 무성하게 자라 꽃까지 피워냈다. 두릅나무 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대장 마루에서 바라본 일몰. <한도훈>

 
 그 옆에 단풍나무 몇 그루도 서 있다. 누군가 심어놓은 단풍나무다. 단풍나무 아래터에는 돼지감자 군락지가 있다. 날씨가 가물어서 그런지 노란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바로 시들어가고 있다. 돼지감자는 봄에 캐서 돼지감자차로 마셔볼 생각이다.

바로 옆에는 밤나무가 심어져 있다. 밤나무 중간 중간에 대추나무도 심어져 있다. 그리고 두릅나무도 있다. 이 밤농장 북쪽은 고구마가 심어져 있는 밭이 있다.

대장 마루 바로 아래에 집이 있다. 돼지 키우던 양돈장(養豚場)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돼지를 키우지 않고 빈 채로 남아 있다. 그 옆 뒤안에 참가죽나무들이 큰 키를 자랑한다. 그 뒤안이 대장 마루와 연결된 등성이다. 참가죽나무들은 세월이 오래되어 줄기가 굵기도 하다. 아마도 100여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아직 그 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기도 하다.
 
대장 마루에 무덤 하나가 있다. 무덤가에 향나무도 한그루 심어져 있다.

예전 할머니 당나무로 향나무가 대장 마루에 있었다. 그 향나무에서 도당제가 한밤 중에 열렸다. 동네에서 제주를 뽑고 그 제주가 도당 향나무에서 제사를 지냈다. 향나무 아래에서의 제사는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제사가 끝난 뒤에는 제주 집에 모여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제사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공동체 생활이었다. 제주만의 서낭당 제사가 아니라 동네 전체의 안녕을 위한 제사이기 때문이었다. 향나무는 그 매개 역할을 담당했다.
 

이른 아침 대장 마루에서 바라 본 풍경. <한도훈>

 
향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날 비가 억수로 쏟아져 대장 들판이 온통 물에 잠겼다. 볏단이 둥둥 떠다니고 원미산인지 성주산인지에서 나무가 통째 떠내려 왔다. 그 나무들이 대장 마을 언덕에 걸쳐졌다.

대장 들판이 바다처럼 넓게 잠기자 한다리 근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대장 마을로 피난을 왔다. 워낙 한밤중에 쏟아진 비 때문에 세간 하나 건지지 못했다. 대장 마루 중턱까지 빗물이 차올랐다. 대장 마루, 섬말 동그랑재에 올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이 빠졌다.

물에 잠긴 세간살이들을 햇빛에 말리고 집안을 청소하고 그렇게 분주하게 보냈다. 그러던 사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향나무 한 그루가 대장 마루에 자리를 잡고 자라났다. 그게 점점 자라나 도당 할머니 나무가 되었다. 대장 마을 도당제의 주인공으로 탄생을 한 것이다.
  
지금은 할머니당 향나무는 없다. 대신 새끼 향나무가 무덤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는 한 기(基)의 묘지만이 있지만 1919년도 지형도를 보면 이 일대에 다섯 기(基)의 묘지가 있었다. 대장 마루 동쪽에도 다섯 기(基)의 묘지가 있었다. 대장 마을에서 묘지가 많은 곳은 팽오리 농장 뒤편으로 무려 십 기(基)의 묘지가 모여 있었다.

지금 이곳엔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장 마루 아래에는 텃밭이며 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막 벼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있어 조만간 대장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할 것이다. 대장 마을 너머에서 섬말이 환하게 편 얼굴을 내민다. 섬말 앞에도 푸른 논들이 가득하다. 우렁이 농사로 짓는 대장쌀이다.

멀리 계양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다. 대장 마을 사람들은 아침에 눈뜨면 계양산부터 바라보았다. 계양산이 대장 마을 사람들에겐 어머니처럼 따뜻한 품을 내주었을 것이다.

계양산은 일년내내 변함없이 대장 들판 너머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품어주었다. 대장 들판은 알차게 열린 황금나락으로 그에 대한 보답을 했다. 계양산이 있어 대장 들판이 더욱 더 빛이 난다. 계양산으로 지는 저녁 해를 대장 마루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마도 부천 팔경(富川 八景)에 해당할 것이다. 아직 부천 팔경을 완성해 놓지는 않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부천 팔경을 찾아볼 생각이다.

대장 마루 아래에 농막이 한 채 있다. 외지에서 찾아와 농사를 짓는 분인데, 대장 마루 밭을 촘촘하게 일구며 무더위를 식혔다. 미나리도 잘 자라 있고 파며 고추 농사가 실하다. 그 농막에서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 소주 한잔을 마셨다.

대장 마루에 몇 평의 땅을 얻어 태평농법으로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풀과의 전쟁을 치렀다. 그렇게 전쟁터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어서 오라”는 손짓이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가서 소주 한잔에 무더위 풀매기 작업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었다.
 
“태평농법으로 농사짓기 참 힘드네요.”
“풀 그거 장난 아니에요. 장마철에는 하루만 매주지 않아도 키를 넘어요.”

그렇게 대장 마루에서 즐거운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