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새벽이다. 대장 마을은 고요하다. 늙은 당산나무 하나 없이 들판 가운데 덩그렇게 놓여진 섬 같은 마을이다. 대장 들판에 심어진 벼들도 고요하다. 그 고요를 깨우며 닭이 운다. 대장 마을을 지키는 대장 수탉!
 

동쪽에서 바라본 대장 마을 일출 <한도훈>

 
 수탉이 새벽 여명이 스쳐오자 본능적으로 빛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기에 눈 뜨자마자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영역 표시를 울음으로 대신한다. 꼬끼오! 이건 바로 대장 수탉이 빚어낸 ‘자신이 최고의 영웅’이라는 포효이기도 하다. 호랑이만 포효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수탉도 포효한다. 그 소리가 청량하게 들릴 뿐이지만...  

수탉은 빛에 예민한 눈을 가졌다. 수탉은 빛이 조금이라도 들오면 바로 눈을 뜨고 솔방울샘을 자극해서 울음을 울게 한다. 어둠이 대장 마을에 밀려오면 지체없이 잠 속에 빠져든다. 반면에 빛이 들어오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날개를 활짝 펴고 울음을 운다. 마을 여기저기서 수탉들이 울기에 조금은 불안한 심정으로 덩달아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에 나선다.  

그러나 암탉은 울지 않는다. 구구구구 작은 소리만 낸다. 병아리를 한군데에 모는 다정한 어미의 목소리다. 자신의 영역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탉은 수많은 암탉을 거느리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에 수시로 울음으로 적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혹시 모를 다른 수탉이 자신의 영역을 넘보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뚝 솟은 볏도 수탉의 상징이다. 

솔방울샘. 한자로는 송과체(松果體)라고 한다. 수탉은 이 솔방울샘이 머리에 가득하다. 솔방울샘은 빛에 민감하게 작용한다. 이 솔방울샘의 작용으로 빛에 가장 민감한 대장 수탉이 되었다. 

사람도 생명 에너지가 생성된 지 사십구일만에 솔방울샘이 만들어진다. 이 솔방울샘으로부터 머리, 팔, 다리, 몸이 만들어진다. 솔방울샘이 없으면 사람의 몸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린 아이일수록 솔방울샘은 커져 있다가 나이가 먹을수록 작아진다. 어린 시절에 머리가 몸 보다 큰 이유가 거기에 있다. 

먹장어와 악어에는 이 솔방울샘이 없다. 그러기에 제대로 빛을 느끼지 못한다. 
 

서쪽에서 바라본 대장 마을 일출 <한도훈>

 
대장 마을에서 수탉의 울음을 들으면서 아침 해를 바라본다. 마음이 상쾌하다. 나도 조그만 영역 표시를 했다는 자부심이다. 사람은 걸어 다니는 그곳이 자신의 영역이다. 대장 마을에 왔으면 대장 마을이 마음의 집인 셈이다. 비록 다른 이들의 몸과 영혼이 쉬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새벽 공기는 나의 영역이다.

대장 마을 위로 해가 솟아오른다. 반가움에 손을 내밀어 덥석 잡고 싶다. 아침 해는 늘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세한 떨림도 함께 한다. 벼들 마다 열린 이슬 속에도 해의 미소가 담긴다. 강아지풀 솜털에도 해의 숨결이 스민다. 밤새 논 속에서 풀들을 갉아먹었을 우렁이도 고개를 들어 해를 맞이한다. 

비 온 뒤라 식물들이 싱그럽다. 길은 질척거리지만 길섶에 있는 한삼덩쿨은 무성한 촉수를 뻗어온다. 이 촉수들에게 걸리면 국물도 없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서 뻗어오는 촉수들이 나를 노린다. 한순간에 다정하던 식물들의 눈빛이 살기 띤 눈빛으로 변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거칠게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올려본다.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대장 마을 앞을 지나는 고리울내는 소리없이 흐른다. 몸빛은 하얗지만 다리가 검은 쇠백로 한 마리가 하늘을 난다. 유난히 노란 발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해가 대장 마을 위로 훌쩍 올라선다.

 

한도훈

한도훈 1961년 전남 나주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역사, 문학 등을 좋아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문학인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해 왔다.
부천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89년도이다. 이때부터 책사랑 도서실 운영, 부천시민신문 기자, 부천실업학교 국어교사, 부천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부천문화원 백일장 심사위원장, 부천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부천이뉴스, 미추홀신문, 월간 사람과 사람들에서 편집인, 편집국장으로 일을 했다.
부천문화원 향토사 체험학습 강사를 하면서 부천지역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부천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부천역사문화 해설사 과정에서 강사로 참여했고, 부천시 향토역사퀴즈왕 선발대회 총괄 주관을 맡기도 했다.
콩나물신문사 편집위원장으로 ‘내고향 부천이야기’ 연재를 했으며,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에서 부천역사 해설사 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인천작가회의 회원, 시와문화 작가회 회원,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천 역사문화 관련 집필로는 ‘부천시사 땅이름 분야 집필’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 ‘신나게 부천을 배우자’ ‘장말도당굿’ ‘부천역사문화투어’ ‘고리울 가는 길’ ‘대장 마을 가는 길’ ‘대장 마을 사진집’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 ‘벌거벗은 신들의 세상1, 2’가 있으며 동화로는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소라의 용못’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오늘, 악어떼가 자살을 했다’ ‘홍시’ ‘코피의 향기’가 있다. 시와문화 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