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배산 움집은 땅파기부터...
청동기인들은 봉배산 등성이에 움을 파고 집을 지었다. 이른바 움집. 한자로는 수혈주거(竪穴住居)다. 수혈(竪穴)이란 ‘땅 아래로 파내려간 구덩이, 구멍’을 일컫는다.

청동기 시대에 집 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덩이인 움을 파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봉배산처럼 산비탈에 집을 지으려면 구멍파기가 더 힘들다. 땅 위엔 바람에 날리고 비에 쓸려온 흙이 덮여 있다. 이 흙은 집짓기 기반으로는 약하다. 이곳에 기둥을 세워 놓으면 비바람이나 태풍에 흔들리다가 바로 쓰러질 공산이 크다.

그러기에 퇴적층을 지나 풍화암반층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풍화암반층이란 바위가 오랜 세월이 지나 모래나 흙으로 변한 층을 말한다. 자연 그대로의 층이어서 단단하다. 이 풍화암반층을 얼마쯤 파내려간 다음에 기둥을 세웠다.

조선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이 풍화암반층에 집을 짓는다. 물론 현대적인 집들은 아예 암반층까지 파고든 다음 시멘트를 부어 기반을 단단히 다진 후에 건물을 올린다.

청동기 시대에도 이 풍화암반층을 걷어내면 생토층(生土層)이 나온다. 이곳에 집을 지었다. 생토(生土)는 ‘한 번도 파헤친 적이 없는 원래 그대로 굳은 땅’인 생땅을 가리킨다. 청동기인들의 집들도  비바람에 잘 견디도록 지어야 하고, 기둥도 단단하게 박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파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강화 부근리의 청동기 시대 움집 <한도훈>

 
부천 봉배산의 21채의 움집들도 생토층까지 파내려갔다. 생땅 그대로 집바닥으로 사용했다. 땅의 온기가 있었을 것이지만 겨울에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억새나 풀들을 두껍게 깔아도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불을 피우고 서로 꼭 껴안고 긴긴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움의 깊이는 보통 50cm 안팎이다. 30cm 정도로 얕은 것도 있어서 점차 지상가옥에 가까워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봉배산의 경우에는 가장 얕은 5㎝에서 가장 깊은 84㎝까지 다양하다.   
 
그럼 땅은 무엇으로 팠을까? 하나의 도구가 눈에 들어온다. 돌도끼. 돌도끼를 낫처럼 굽은 나무에 묶어 사용했다. 마치 곡갱이처럼 묶여진 돌도끼로 흙을 파내었다. 물론 이렇게 돌도끼를 사용할 줄 몰랐다면 막대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일일이 손으로 파내야 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 움집 짓기 
움 파기가 되면 이제 돌도끼로 베어온 굵은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청동기 시대 움집은 직사각형인 장방형(長方形)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원형이었지만 움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직사각형으로 발전을 한 것이다. 이 직사각형 가운데를 가로질러 구멍을 파고 기둥을 세웠다.

청동기 시대에는 중앙기둥을 올려놓는 곳에 돌을 놓는 초석은 없었다. 초석은 중앙 기둥의 지지역할을 강화한 가옥으로의 발전된 형태이다 청동기 후기 이후에서 아주 원시적인 초석을 놓기 시작해서 철기 시대에나 가능했다. 청동기 시대에는 실질적으로 초석 놓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게 정설이다.

제7호 주거지를 보면 일렬로 소토층(燒土層)이 있다. 소토층은 ‘불에 탄 점토가 형성한 흙층’이다. 이 소토층은 불자리일 가능성도 있지만 움집 안에 무려 다섯 개가 있어서 중앙 기둥을 세우기 위해 바닥을 다지느라 불을 피웠다는 증거이다. 중앙기둥은 들락거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2m 내외로 세웠다. 움집으로 들어갈 때는 허리를 숙이지만 안에 들어가서는 서서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이다.

중앙에 한 줄로 기둥을 세우는 것을 ‘주심도리식, 중심열주식’ 구조라고 한다. 한옥으로 치면 우진각 형식으로 지어진다.

중앙기둥이 세워지면 직사각형 벽을 따라 작은 말뚝들을 세웠다. 보통 10㎝ 정도로 촘촘하게 박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30㎝ 정도 넓이로 말뚝을 박기도 했다. 이럴 땐 중간에 다른 판재를 넣어서 엮은 억새나 풀들을 씌울 때 편하도록 했다. 높이는 1m 정도이다. 

이 정도 높이로 말뚝을 다듬어서 생토층에 두드려 박아야 했다. 물론 구멍을 파서 말뚝을 심을 수도 있다. 움집의 길이에 따라 말뚝도 많이 박았을 것이다.

부천 봉배산에서 가장 큰 움집은 제13호로 19m×4m이다. 76㎡인 22.99평이다. 초대형 움집이다. 청동기 주거지들에서 20㎥(6.05평) 정도 되는 것이 많이 발견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정도가 당시 움집의 표준형이다.

이 움집에 10㎝ 간격으로 말뚝을 박았다면 한쪽 면에 95개의 말뚝을 박아야 한다. 양쪽에 190개의 말뚝을 박아야 해서 이게 장난이 아니다. 30㎝의 간격으로 말뚝을 박았다면 한쪽에 31.5개인 32개 정도를 박아야 한다. 양쪽에 63개를 박는다. 아마도 이 정도 간격으로 말뚝을 박아야 움집이 튼튼하게 서 있을 수 있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양쪽으로 세워진 말뚝하고 중앙기둥을 연결한다. 잘 다듬은 막대를 중앙기둥에 묶고 양켠에 박아 놓은 말뚝에 묶는다. 보통 써까래라고 한다. 이때 칡넝쿨로 단단하게 묶었을 것이다. 수많은 기둥들을 묶고 또 묶는다. 먼저 묶여진 막대를 가로질러서도 막대를 묶었다. 이렇게 막대 묶는 것이 완성되면 마치 삼각형의 텐트와 같은 형태가 된다. 

움집의 뼈대가 완성되어 가는 중에 다른 이들은 갈대나 억새를 베어나르기 바쁘다. 바싹 말려서 써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풀들이 다 마르면 이를 지붕에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엉을 올리는 작업이다. 이엉은 억새풀이나 갈대를 엮는 것을 말한다. 그냥 올려놓으면 센 바람이 불때 바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칡넝쿨로 묶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엉과 써가래 사이를 묶는 작업이다. 지붕에 이엉을 얇게 올려놓으면 비가 샐 수 있어서 두껍게 해야 한다. 여러 겹으로 이엉을 두르고 이를 단단히 묶는다. 

이렇게 일차 움집이 완성된 다음에는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든다. 출입구는 최대한 낮게 만든다. 출입구에 거적대기 같은 것을 걸쳐놓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러기에 청동기인의 움집은 주로 바람이 직격탄으로 들어오는 곳을 피해 출입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출입구까지 완성된 다음 움집 안에 들어가면 아늑하다. 제13호의 경우에는 10명 이상의 청동기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맛있는 점심 식사를 즐기었을 것이다.  

봉배산 움집의 크기는 다양  
봉배산 청동기 시대 움집들의 크기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움집도 있다.

 

봉배산 청동기 움집 제2호 집터 자리 <한도훈>

제18호 움집은 2.31㎡(0.69평)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원형점토대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직사각형 주거지로 명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제21호는 6㎡(1.81평) 정도이다. 한사람 정도가 누울 수 있을까? 그런데 이곳에서 돌도끼가 출토되고, 무문토기 몸체 조각이 출토되었다.

제3호 주거지는 9.25㎡(2.79평)이다. 제19호는 11㎡(3.32평)이다. 이곳에선 돌화살촉이 발굴되었다. 제14호 주거지는 18㎡(5.44평)이다. 제9호는 18.3㎡(5.50평)이다. 반달돌칼, 돌화살촉,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제12호는 20.02㎡(6.05평)이다. 무늬 없는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제1호 주거지는 20.40㎡(6.17평)이다. 돌칼, 돌화살촉, 달도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제2호 주거지는 24.5㎡(7.41평)이다. 돌화살촉, 돌도끼, 옥제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제17호는 14.26㎡(4.31평)이다. 돌칼의 슴베 부분 등이 출토되었다. 제8호는 25.77㎡(7.79평)이다. 돌칼, 돌창,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제15호는 31.98㎡(9.67평)이다. 돌도끼, 반달돌칼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제11호는 32.55㎡(9.84평)이다. 반달돌칼, 돌도끼,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제6호 33.1㎡(10.01평)이다. 돌칼, 돌화살촉,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제20호는 35.31㎡(10.68평)이다. 반달돌칼 등이 발굴되었다.

제10호 주거지는 45㎡(13.61평)이다. 돌도끼, 반달돌칼,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제7호는 60.62㎡(18.33평)이다. 돌칼, 돌화살촉,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마지막으로 제13호는 76㎡(22.99평)이다. 반달돌칼, 돌화살촉, 관옥, 곡옥 등이 출토되었다.

두 곳의 움집은 그 크기를 잴 수 없어서 표시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다양하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움집의 크기가 클수록 유물의 숫자가 많다는 점이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한 평도 되지 않은 주거지에서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움집은 지었으되 생활은 움집 바깥에서 했다고 추측해 본다. 물론 돌칼이나 돌창 같은 무기들을 만들 때는 움집 바깥에서 작업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게 겨울이라면 당연히 움집 안에서 작업을 했을 것이고...

움집 바닥 면적이 20∼30㎡이면 평균으로 친다. 보통 5, 6명의 식구가 사용하였다. 청동기 시대 직사각형 평면은 이후 민가에 있어서 원형적인 평면 형태가 된다. 직사각형이지만 모서리가 둥근 형태인 말각방형(抹角方形)도 있다.

움집 내부 공간은 여러 기능으로 분화되었다. 출입구 가까이는 농기구를 둔 남자들의 공간이다. 가장 깊숙한 곳은 토기 등을 둔 저장 공간이다. 이곳은 여자들의 공간이다. 화덕은 구석으로 밀려났다. 신석기 시대 움집에선 한가운데를 차지했지만...

나중에 이같은 공간 배치는 사랑방, 사랑채는 남자들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자들의 공간은 안방, 안채로 안착했다. 작업공간은 중간지대이자 한쪽에 치우친 부엌과 행랑으로 각각 발전하게 된다.

 

한도훈

한도훈 1961년 전남 나주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역사, 문학 등을 좋아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문학인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해 왔다.
부천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89년도이다. 이때부터 책사랑 도서실 운영, 부천시민신문 기자, 부천실업학교 국어교사, 부천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부천문화원 백일장 심사위원장, 부천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부천이뉴스, 미추홀신문, 월간 사람과 사람들에서 편집인, 편집국장으로 일을 했다.
부천문화원 향토사 체험학습 강사를 하면서 부천지역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부천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부천역사문화 해설사 과정에서 강사로 참여했고, 부천시 향토역사퀴즈왕 선발대회 총괄 주관을 맡기도 했다.
콩나물신문사 편집위원장으로 ‘내고향 부천이야기’ 연재를 했으며,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에서 부천역사 해설사 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인천작가회의 회원, 시와문화 작가회 회원,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천 역사문화 관련 집필로는 ‘부천시사 땅이름 분야 집필’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 ‘신나게 부천을 배우자’ ‘장말도당굿’ ‘부천역사문화투어’ ‘고리울 가는 길’ ‘대장 마을 가는 길’ ‘대장 마을 사진집’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 ‘벌거벗은 신들의 세상1, 2’가 있으며 동화로는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소라의 용못’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오늘, 악어떼가 자살을 했다’ ‘홍시’ ‘코피의 향기’가 있다. 시와문화 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