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확보된 녹음파일은 무죄가능성 높아..
법이 개입하기 전에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사안이었는지도 되돌아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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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몰래 녹음하면, 통상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예외적 상황에서 법원이 ‘적법행위 기대 가능성’을 이유로 책임을 조각한 사례로, 향후 실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던 A는 어느 날 밤, 외도 상대자로 추정되는 C의 차를 타고 귀가 중이던 남편 B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는 끝났지만, B가 통화를 ‘종료’하지 않아 A는 B와 C의 대화를 그대로 청취하게 되었고, 당시 A의 휴대폰에는 자동녹음 기능이 설정돼 있었습니다.
A는 이 대화 파일을 추후 남편과의 이혼 소송, 그리고 외도 상대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증거로 제출하였고, 이에 대해 검찰은 A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A에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① 우연히 청취하게 된 점 : A가 남편과의 통화를 마친 후 ‘통화 종료’가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화를 청취한 것이며, 처음부터 타인 간 대화를 엿들을 의도로 녹음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② 심리 상태 및 상황의 특수성 : A는 외도 의심 상황에서 남편이 다른 여성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자 하는 마음이었고, 이러한 긴박한 감정 상태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된다는 인식을 못했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③ 적법행위 기대 가능성 부재 : 일반인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방법으로 외도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은 그 행위를 위법하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④ 녹음파일의 제출 역시 용인 가능 : 녹음파일을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이혼소송의 증거로 제출한 행위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행위라고 보았으며, 이를 ‘타인 간 대화내용 누설’로 형사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은 ‘제3자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에 대한 기존 입장을 완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법원은 여전히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에 따라 타인 간의 비공개 대화를 녹음·청취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행위자의 상황, 심리 상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적법행위 기대 가능성’이 없었다면 책임이 조각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결입니다. 이와 함께, 이처럼 우연히 확보된 녹음파일을 민사소송 증거로 제출하는 행위도 일정한 요건 하에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다는 입장은 향후 실무에서 자주 인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은 형사재판이라는 법적 절차로까지 이어졌지만, 그 본질은 이혼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감정의 충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약 부부 간의 갈등이 사전에 조율되거나, 법률적 분쟁이 아닌 전문가의 중재와 협상을 통한 정리가 가능했다면, 녹음 파일이라는 예민한 증거를 둘러싼 형사 문제까지 비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협상은 법적 분쟁을 피하는 수단이자, 감정적 충돌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도구입니다. 특히 이혼, 외도, 재산분할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는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법적 분쟁의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관계의 균열과 감정의 격돌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런 문제일수록 법정 이전의 '협상 테이블'이 더욱 중요한 해결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판결은 ‘상황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여 기계적인 법률 해석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인식 가능성과 행위의 불가피성을 중심으로 판단을 내린 사례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소송 과정에서 제출되는 증거의 적법성과 수집 경위가 문제가 되는 경우, 단순히 ‘녹음=불법’으로 단정하기보다는, 그 취득 경위와 사용 목적의 정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법이 개입하기 전에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사안이었는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협상은 감정을 정리하고,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입니다.
박병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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